길 이야기

올레16코스(항몽유적지~수산)

라온! 2017. 1. 16. 23:40

 

올레16코스(항몽유적지~수산)...

 

 

먼나무 열매가 붉다지쳐 탐스럽기까지 한 길...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시 한편씩을

읽어가다보니 어느 새 수산저수지가 있었다...

 

 

혼자 가질 수 없는 것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게 만드셨다

사방에 피어나는

저 나무와 꽃들 사이

푸르게 솟어나는 웃음 같은 것

가장 소중한 것은

혼자 가질 수 없게 만드셨다

새로 건 달력 속에 숨 쉬는 처녀들

당신의 호명을 기다리는 좋은 언어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저절로 솟게 만드셧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속으로

그윽이 떠오으는 별 같은 것

 

-문정희-

 

 

겨울 은적암

나무들 해탈하듯 무소유의 열반에 들었다

스님 한 분 그 눈길 화두 찍으며 내려와서

세상의 번뇌 만나려 녹슨 쇠다리 건넌다

이제 은적암은 저 혼자 동안거 중

누가 먼 길 일부러 온대도 헛걸음일 뿐

저 고요 못내 겨워서 솔잎 더욱 파랗다

 

-손정순-

 

 

 

 

봄 하늘 아래

누군가 연두빛 바람으로

나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다

내 굽은 잔등에도

금싸라기는 쏟아지고

그 자디잔 은총

빛가루들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저리 신비롭기만 한

부활의 언어들은 살아나고 있다

이 해도 어김없이

차가운 손을 털고 다시금

첫사랑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목숨들이

연초록 불꽃이 지펴지는

남녘을 향해 실눈을 뜨고

저마다의 의미를 진언하며

천지 가득 출렁이고 있다

 

-권택명-

 

 

 

 

사랑에 관하여

눈을 어깨 가득 지고 서 있는

겨울나무 숲길을 걸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눈 위에 선명하게 남겨진 자국들,

그 발자국을 바라보며

받아들임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눈은 나의 몸무게만큼의 깊이로

신발 크기만큼의 넓이로

신발 모양 그대로의 무늬로

나를 포근하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가삼에

그의 깊이를

그의 넓이를

그리고 그의 선명한 무늬를 남기는 것

 

-박상천-

 

 

생(生)이란

타박타박 들길을 간다

자갈밭 틈새 호오올 타오르는 들꽃 같은 것,

절뚝절뚝 사막을 걷는다

모래바람 흐린 허공에

살풋 내비치는 별빛같은 것

헤적헤적 강을 건넌다

안개,물안개,갈대가 서걱인다

대안(對岸)에 버려야 할 뗏목 같은 것

쉬엄쉬엄 고래를 오른다

영(嶺)너머 어두워지는 겨울 하늘

스러지는 노을 같은 것

불꽃이라 한다

이슬이라고 한다

바람에 날리는 흙먼지라고 한다

 

-오세영-

 

 

 

 

바람냄새 좋은 어느 겨울

어여쁜 동박새가 맛있게 먹어주길...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피기 시작을 했다.

겨울도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는데 벌써

봄을 부르고 있는 매화향이 그저 고마울 뿐...

 

 

굳이 잊지말아달라 하지 않아도 잊기가 그리

쉬울 것 같지 않은 짙은 향기에 취해본다

 

 

새에게...

새야 너는 좋겠네 길 없는 길이 많아서

새 길을 닦거나 포장을 하지 않아도

가다가 서다가 하지 않아도 되니,정말 좋겠네

높이 날아오를 때만 잠시 하늘을 빌렸다

되돌려주기만 하면 되니까,정말 좋겠네

길 위에서 자주자주 길을 잃고 길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길이 너무나 많은 길 위에서

나는 철없이 꿈길을 가는 아이처럼

옥빛 하늘 멀리 날아오르는 네가 부럽네

길 없는 길이 너무 많은 네가 정말 부럽네

 

-이태수-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김종해-

 

 

 

 

 

 

 

 

낙화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은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뭍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풍경

바람은 풍경을 흔들어댑니다

풍경소리는 하늘 아래 퍼져 나갑니다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속마음의 그윽한 적막을 알 리 없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나를 흔듭니다

흔들릴수록 자꾸만 어두워져 버립니다

어둡고 아플수록 풍경은

맑고 밝은 소리를 길어 나릅니다

비워도 비워내도 채워지는 나는

아픔과 어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어두워질수록 명징하게 울리는 풍경은

아마도 모든 걸 다 비워내서 그런가 봅니다

 

-이태수-

 

 

빗소리

내가 잠든 사이 울면서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 간 여자처럼

어느 술집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거의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손으로 만지기만 하던 그 여자처럼

투명한 소주잔에 비친 지문처럼

창문에 반짝이는 저 밤 빗소리

 

-박형준-

 

 

 

나의 바다

나의 바다 나의 알몸

물결쳐라 불타올라라

모조리 타서 구름이 되게 하라

바람이 되게 하라

나의 바다

누가 알리

내 바다 속 내밀한 속의

그 눈부시게 빛나는 꽃 섬들을

 

-신석초- 

 

 

 

 

 

 

 

 

다음은 어떤 시 한편이 있을까? 하며

한발한발 걷다보니 도착한 수산저수지....

조류인플루엔자로 저수지 주변은 출입이 통제되고

바람탓인지 파도치는 저수지에 옷깃을 여미며 여기서

 오늘 일정은 쫑!!!

유난히 동백꽃에 빠져 동백꽃만 본 것 같다.

그 철이 아니면 존재감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들

이곳에 이렇게 동백꽃길이 많음도 새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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