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진성
조선시대 제주도의 전략적 요충지 아홉 진성중 하나로 16세기 초
제주목사 장림이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木城)으로 축조하였다
그 후 16세기 말 제주목사 이경록이 쌓았던 석성은 일제강정기에
항구 축성 등으로 헐어져 최근에 일부가 복원되었다.
조선말기 석대(石帶)로 옛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베풀던 수려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명월천을 따라 울창한 숲과 바위로 이뤄진 제주 특유의 계곡
으로 냇가를 따라 수백 년이나 되는 팽나무 100여 그루가 우거져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수령이 수백년이 넘은 노거수 10여 그루가 있고 산유자나무
보리장나무 등이 사이사이에 섞여 잇어 웅장한 풍치를 자아내는 곳이다.
6.25전쟁 발발 직후 군,경에 의한 민간인 집달학살로
예비검속(혐의자를 미리 잡아 가두어 놓는 일)이란 미명아래
죄없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며 한림에서만 12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어떤 마을이 되었든 4.3의 희생자가 없는 마을이 없고 그로인해
사라진 마을도 수 없이 많다.
그런 역사성을 같고만 본다면 의미가 있는 길일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들이 걷기에는....??
명월을 지나면서부터는 대부분 축산농가들 사이로 길이 나 있어
구제역 발생시나 조류독감 발발시 물론 통제는 하겠지만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가 늘 산재하고 있고 분뇨로 인한 악취가 해충(파리등)들이
많아 불쾌감을 느낄수 밖에 없어 일정구간은 우회노선을
만들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